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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책 후기

책 | 목로 주점 - 에밀 졸라

by forgodot 2023. 10. 15.
Café Terrace at Night - Vincent van Gogh

목로주점.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미지는 고흐의 Café Terrace at Night 였다.

프랑스의 작은 주점에서 벌어지는 서민들의 삶에 관한 소설 일까?

프랑스의 주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 '고흐의 Café Terrace at Night'처럼 어떤 낭만과 힐링의 사건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열고 점점 남아 있는 페이지가 줄어들 때쯤에는, 내가 예상했던 목로주점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목로주점은 괴물이었다.

마르지 않는 싸구려 증류수가 콸콸 뿜어져 나오는 샘물 같은 곳.

삶에 한기가 서려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목구멍을 뜨겁게 데워줄 싸구려 증류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모든 알코올 음료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처음엔 마시는 사람의 혈색을 좋게하고 기분을 북돋아주지만,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노동자를 집어 삼킨다.

그런 생활이 하루 하루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 괴물에 길들여 지게 되고, 돈이 생기는 즉시 주점으로 달려가 돈을 지불하고 스스로 괴물의 먹이가 된다. 그들은 더이상 술을 마시러 가는 손님이 아니라 술에게 먹히러 가는 재물이다. 그들을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주정뱅이'라고 부른다.

싸구려 증류수는 주정뱅이의 몸속의 혈관을 타고 이곳 저곳 구석구석 흘러 다니며, 숙주로서 그들을 조정한다. 그렇게 알코올의 노예가 된 주정뱅이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폭력과 폭언으로 그들의 몸 속에 괴물이 존재함을 과시한다.

멀쩡했던 사람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가 경멸했던 주정뱅이가 되고, 주정뱅이는 아내에게, 자식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른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고 결국 자기자신마저 완전히 증류수라는 괴물에게 먹혀서 죽게 된다.

 

상권에서 제르베즈는 바람난 전남편으로 인해 빨래터에서 격투신까지 하면서 힘들게 파리 하층민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지만, 줄기차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성실한 남자를 만나서 점점 평화로운 삶을 사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녀의 평탄한 삶 중간 중간에 앞으로 닥칠 불안한 요소들이 조금씩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상권은 끝이 나고, 하권으로 넘어간다.

 

하권부터는 그녀의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된다. 어이없게도 같은 집에 살게되는 바람난 전 남편(랑티에)의 출연과 주정뱅이가 되어가는 남편 쿠포, 그로 인해 벌어도 벌어도 오히려 어려워지는 가정 형편 때문에 제르베즈까지 자포자기하게 되고 타락하게 된다.

 

그녀의 몰락에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은 목로주점의 싸구려 증류수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쿠포 부부의 낭비벽도 한 몫 했겠지만, 오직 그것 때문이라면, 이렇게 빠르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람난 전남편 랑티에.

그는 기생충 같은 존재이다.

그는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럴듯한 말과 행동으로 여기저기 붙어서 뻔뻔하게 달콤한 피를 빨아먹고 그들을 몰락하게 만든다. 쿠포부부가 그랬고, 푸아송 부부가 그랬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엔 그는 이웃 식당의 딸을 꼬드겨서 내장가게를 차리라고 부추긴다. 그는 그렇게 계속 자신의 안위를 타인의 희생으로 인해 유지해 나가는 특별한 기생충 같은 재주를 가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몰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몰락은 처음엔 아주 미세한 징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평화로운 기분은 그 징후를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고,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 결국엔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신세를 한탄하게 되었을땐, 적극적이고 어려운 노력보단 손쉬운 회피의 방법을 찾게 된다.

그 회피의 결과는 결국은 스스로를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밀어버리게 되는 듯.

 

그저 점점 산업화 되어가는 시대에서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 수록 여기저기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책이었던 거 같다.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 소설은 세가지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펼쳐지는 제르베즈의 삶의 곡선을 기준으로. 

목로주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랑티에의 착취행위의 의미는?

 

먼저 제르베즈의 삶의 곡선을 기준으로 풀어보면.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의 줄거리는 제르베즈의 삶을 기준으로 커다란 곡선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속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복선들이 숨겨져 있다.

물론, 목로주점은 그녀의 삶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데 큰 영향을 준다. 이렇듯 상권의 마지막 장과 하권의 첫번째 장은 떨어지는 곡선의 최고점을 찍게 만듭니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노동자들이 많은 곳에서 생활을 해서 그런지 노동자들의 말투와 행동을 표현 하는 문장에 디테일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로주점이 의미하는 것은 위의 본문에서 언급했고. 

 

랑티에의 착취 행위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여자를 탐하고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영위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던 도중에 혹시 에밀 졸라가 이 랑티에라는 캐릭터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랑티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과 확실히 반대편에 서 있는 캐릭터다. 

몸이 축나도록 일해도, 자신의 원하는 생활을 영위하지도 못하는 노동자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

혹시 랑티에는 자신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서 배부른 돼지처럼 부를 누리는 자본가를 말하고자 한 걸까?

 


유명한 고전 책이고 상, 하권으로 나뉘어질 만큼 분량도 많은 책이라 책을 읽기 전에 '과연 완독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소설 속 문장도 워낙 생생하고 생동감 있으며 캐릭터들의 개성 또한 확실해서 읽는 내내 마치 눈 앞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재미있게 완독하게 됐다.  

 

그저 단순하게 교훈이라면

'술은 적당히 마시고, 술에게 먹히지 마라!

주정뱅이는 호환마마보다 무섭습니다!' 겠지만 이런 요약보다는 소설 속 문장의 디테일이 훨씬 재미가 있으니깐 다른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